내일의 지경을 넓히는 오늘을 살라

2014.08.10 | 정존수 목사
역대상 4:9-10

 

오늘 말씀에는 야베스라는 사람의 짧은 기도가 나옵니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대상4:10)”입니다. 개역 한글 성경에서는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로 되어 있습니다. 야베스가 했던 첫 번째 기도는 “하나님 나를 축복하시려거든 나의 지경을 넓혀주세요”입니다. 여기에서 지경이란 말은 크게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니 사람이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는가?’라고 말할 때 쓰는 형편과 사정이고, 두 번째는 내가 살고 있는 땅을 의미합니다. 야베스가 기도한 지경은 이 후자에 해당합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복을 주실 때 반드시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특별히 우리 삶에 더 중요한 지경은 영적인 지경입니다. 영적인 지경이 무엇입니까? 신앙의 지경, 사랑의 지경, 관계성의 지경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부하신 복음의 지경이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학원 강사는 교원대를 나오고 우수하게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힘들게 된 교직을 버리고 학원 강사가 되었습니다. 이유인 즉, 자기는 많은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는데, 강사를 하면 수만명의 더 많은 학생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명한 학원 강사가 되게 하시고 복음의 지경을 넓혀 주신 것입니다.

1. 오늘 내게 와진 고통과 괴로움이 지경을 넓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주목해야 할 게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입니다. “…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대상4:9)” 여기에 “수고로이 낳았다” 가 ‘야베스’의 뜻입니다. 어머니가 야베스를 낳을 때 많은 고통을 겪고, 수고로이 낳았음을 의미합니다. 야베스가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이름의 뜻이 ‘괴롭게 하는 자’ 입니다. ‘괴롭게 하는 녀석아 밥 먹어라’ ‘슬프게 하는 녀석아 이것 좀 해라’ 내 존재 자체가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베스가 담대하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내 지경을 넓혀 주옵소서” 이름마저도 고통인 야베스가 “내 지경을 넓혀 주옵소서”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 삶에 고통이 찾아오면 내 자리가 없어지고 지경이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야베스는 괴로움의 현실에서 지경을 넓혀 달라고 합니다. 이 기도는 지금 내 삶이 고통스럽고 괴로워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나의 지경이 넓어질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신앙이란 고통과 위기가 올 때, 내 삶의 지경이 넓어질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혹독한 인생의 시련을 겪은 사람은 욥입니다. 욥은 한 날에 자녀 열 명을 잃었습니다. 그의 재산, 기르던 가축 수만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시련이 올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친구들이 와서 위로한답시고 말하는데 가슴을 후벼냅니다. 그런데 욥이 나중에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처절하게 회개하면서 놀라운 고백을 하기를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고 말합니다. 나의 신앙이 과거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피상적으로만 알았는데, 고난을 겪고 났더니 이제는 신앙의 지경이 넓어진 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욥이 당한 것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이었는데, 놀랍게도 완전히 다른 차원의 신앙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2. 오늘 내게 주신 직분이 내 지경을 넓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이 달란트 비유를 들을 때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운이 좋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불행하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왜냐하면, 이 달란트는 것은 그냥 준 게 아니라 맡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맡겼다는 것은 주인이 도로 찾을 것이기 때문에 결코 좋은 게 아닙니다.

제가 전에 교육목사를 할 때 교회에서 새 교육관을 지어 주었습니다. 교육관이 아주 크고 깨끗하게 잘 지어졌습니다. 다들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육관을 보면서 유일하게 마음이 무거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교육목사인 저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크고 좋은 교육관은 제가 살 집이 아니었습니다. 더 좋고, 알차고, 나은 교회교육을 위해서 지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새 교육관을 볼 때마다 마음에 부담이 된 것입니다.

이게 직분 맡은 자의 어려움입니다. 그런데 어려운 직분을 잘 감당하고 나면 지경은 넓어집니다. 직분의 어려움이 클수록, 그 직분을 감당하고 나면 그만큼 나의 지경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다행히 그 달란트를 잘 감당했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았는데 열심히 해서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 후에 찾아오는 결과가 무엇입니까? 주인이 칭찬하기를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1)”말한 것입니다. 종이 주인의 잔치 자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위치의 사람이 되고, 지경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3. 오늘 내게 주신 관계성이 지경을 넓히는 기회가 됩니다.

여러분, 지혜로운 인생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관계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가끔 보면, 관계성을 소홀히 여기고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아 지경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억할 것은, 내가 맺고 있는 관계성이 당장 유익이 되지 않아도, 그 관계를 귀하게 여길 때 내 지경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요셉은 감옥에 갇혔을 때 왕의 신하들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는 술 맡은 관원이요, 다른 하나는 떡 굽는 관원입니다. 사회적으론 대단한 사람들이지만, 감옥 안에서야 요셉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요셉은 이들과 관계성을 잘 맺었습니다. 하루는 그들이 해괴한 꿈을 꾸었을 때 그 꿈을 잘 해몽해 주었습니다. 죄수라고 가볍게 여기고 무시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죄수일지라도 그 관계성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해몽을 해 주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술맡은 관원이 복직 되었고, 애굽의 왕 바로가 꿈을 꾸었을 때 요셉을 바로 앞으로 인도해 준 것입니다. 내게 주신 관계성을 하나님이 주신 관계성으로 믿었을 때, 내일의 지경을 넓히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욥도 같습니다. 욥이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을 당할 때 친구들이 와서 충고를 한다는 게 “네가 이런 일을 당할 때는, 하나님께 큰 죄를 지은 게 아니냐?” 욥을 위로하기 보다는 아픈 상처를 후벼 판 것입니다. 그런데 욥기서 42장을 보면 놀라운 장면이 나옵니다. 욥이 그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상처를 주고 절망을 준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이 그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 것입니다. 그가 고난을 받기 이전보다 지경을 넓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까운 사람들을 만날 때, 오히려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관계를 버리고 싶고, 나도 똑같이 해 주고 싶은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모든 관계를 하나님이 주신 것을 알 때, 지경이 넓어지는 일들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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